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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야설 여승무원, 연인, 여자 - 2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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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야동의민족 댓글 0건 조회 10,594회 작성일 25-01-23 13:48

본문

난 생과일 주스를 좋아한다.


난 개인적으로 딸기 주스가 제일 맛있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딸기 주스는 토마토 주스나 키위 주스보다 주문을 하지 않게 되더라.




참 이상도 하지….


이유가 뭘까?




하지만 내가 한 모금 마시고 있는 것은 생과일 주스가 아니다.


혜미가 카푸치노를 주문하길래 덩달아서 같은 걸로 주문했다.




3층 커피숍에서 혜미는 아무 말 없이 창 밖으로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주고 싶을 정도로 서정성이 돋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하지만 아무리 봐도 얼굴이 약간 안돼어 보인다.




혜미는 차 안에서나 이런 곳에서나 불문하고 창이 있는 곳이라면


으레껏 창 밖의 풍경을 지켜보곤 한다.


사람 쪽으로는 고개를 잘 돌리지 않고 말이다.




승무원이라서 그럴까?




항상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며, 서비스를 할 때나 갤리에 있을 때를 제외하곤


늘 창 밖 하늘의 풍경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혜미는 계속 창 밖을 주시하고 있다.




혜미는 간편한 차림으로 병원에 나타났다.


청바지에 반팔 티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가디건을 걸치고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청바지를 입은 혜미의 몸매가 늘씬한 것이 무척 보기 좋았다.


요즘 키 큰 여자들이 무척 많긴 하지만, 혜미도 빠지진 않잖아?




이런이런...


아픈 애를 두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람?




나쁜 놈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가까이 다가설 때 무척 긴장했었는데,


정작 마주 대하고 모습을 살펴보니 표시는 거의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디건을 걸치고 청바지를 입은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팔과 다리 여기저기에 멍자국이 났기 때문이 아닐까?




혜미의 메이크업도 신경이 쓰인다.




일부러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이 평소의 연한 화장과는 달리 낯설게 느껴진다.


일부러 화장을 짙게 한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자는…모자는…머리를 감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테고…


아무래도 얼굴을 어느 정도는 감추어 주는 작용을 하니까……




표시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혜미의 복장이나 화장이 갑작스레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을 띈다는 것은 뭘 의미하겠는가.




그런 점을 생각하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라려 왔다.


마음이…쓰라려 왔다.




내 모습을 보고 혜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얼굴에 살짝 당혹해하는 빛이 어렸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을 뿐이었다.




잠깐 몸을 옆으로 돌리고 시선을 낮추어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고개를 한번 살짝 떨구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들고 내 쪽을 바라봤다.




나는 혜미의 가까이로 일부러 약간 급한듯이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미안…미안해 혜미야.”




이럴 때 서툰 농담은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그냥 솔직한 말이 최고다.




가까이 다가가서는 얼른 혜미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잡은 손에 슬며시 힘을 주면서 손에 나의 체온을 담아 혜미에게 전했다.




이것저것 따지도록 만들 틈을 주지말자.


절대로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사람들은 급하게 서두르는 사람을 쉽게 기억하지만,


태연스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은 의외로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따지지 마라 혜미야….


제발 따지지 마라….




어쩌면 손과 발이 닳도록 빌고 또 빌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기우였을 뿐이다.




혜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냥 형식적인 인사만 건넬 뿐이었다.




“미안, 연락이 안되길래….너무 보고 싶어서…”




나도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혜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혜미는 내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비행은 잘 다녀왔니?”




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뭐라도 좀 마실까? 기다리다 보니 목이 마르다.”




혜미가 순순히 응했다.


함께 일부러 밖으로 걸어나가 커피숍을 찾게 되었다.




“혜미야……”




내가 창 밖을 주시하고 있는 혜미에게 말을 건넸다.


혜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본다.




“혜미야…놀라게 해서 미안…”




내가 다시한번 사과했다.


혜미는 시선을 내리깔면서 아무 말이 없다.




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




“화 내지 말아 줘….”




“화 안났어요.”




혜미가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속삭인다.


그러더니 살짝 말을 잇는다.




“좀 뜻밖이라서 놀라긴 했지만….”




“미안….달리 좋은 방법이 생각나질 않아서…어쩔 수 없이 말이야….”




“그래도 좀 심하네요.”




“………………………….”


갑자기 달리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태화 오빠한테 전화하라고 하신 건가요?”




“아니…그거 내가 태화 번호로 문자 보낸거야.”




나는 시침을 뚝 떼었다.




“내가 태화오빠한테 연락이라도 먼저 했으면 어쩌려구요?”




“흠..그러네…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네가 연락 안하고 바로 올 줄 알았다고 하면 기분이 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미처 생각을 못했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한마디를 덧붙여야지.




“와줘서 고마워…정말 고마워.”




혜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혜미가 중얼거리듯이 불쑥 한마디를 덧붙인다.




“걱정 많이 했는데…..”




나도!!


나도 네 걱정 많이 했어.




네 이야기를 태화에게 전해 듣고선….


줄곧 걱정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너를 보면서도…


난 계속 걱정하고 있어…




널 보니…


널 이렇게 마주 대하고 있는데…




이런 말하긴 좀 쪽팔리지만....


......................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할까…




그렇다.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혜미의 모습을 마주 대하고 있으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리고 몇 초가 흐른 지금에서야….


너의 그 한마디…




걱정 많이 했는데…라는 말이 자꾸만 되뇌어지고 실감이 나.




내 걱정 많이 해준거야?




짧게 내뱉은 한마디에 혜미 마음 속의 내 무게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기뻤다.




내가 물었다.




“그럼….조금 전에…조금 전에 내 모습 보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데?”




혜미가 내 눈을 바라본다.


잠시 바라보더니 혼자 중얼거리듯이 대답한다.




“무사하구나…


무사해서 다행이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뭔가 가슴 속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의 덩어리가 순식간에 뭉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러고보니 오늘 혜미를 만나고선 자꾸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혜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 대한 반응이 예전보다 너무나 늦어진다.


혜미의 말이 귀에 들어올 때…정신이 멍하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그 말이 또렷이 뇌리에 울려퍼진다.




조금전까진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고, 청산유수처럼 중얼중얼거렸는데….


만나면 여러가지 내가 들려줄 이야기들이 많을줄로만 알았는데….




어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걸까…




아직 필을 못 받아서 그런건가…




나 원래 이런 놈이 아닌데….


내가 왜 이리 우물쭈물 하고 있을까….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거지….




“…………………..”




“…………………..”




혜미와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아아…답답하다…


이런거 무지무지하게 싫은데….




그래도 침묵이 흐른다….




혜미의 폰이 진동으로 울리는 것이 느껴진다.


혜미가 손가방에서 폰을 꺼내들고 발신인을 확인하더니….


그냥 슬며시 내려놓는다….




“부모님이니?”




“……………출장 가시고 안계세요.”




“아버님이랑 어머님 모두?”




“………………네.”




“오늘 안 돌아오시니?”




“………………며칠 있다 오실 거에요.”




“남자친구야?”




“………………네.”




그 자식이니?


널 때렸다는 녀석이…?




“내가 자리 비켜줄까?”




“………………아뇨, 괜찮아요.”




“………………나 너 많이 보고 싶었다.”




혜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다시 바라본다.


오늘 따라 계속 무표정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아아…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데…..


아아…왜 이러지….


왜 이리도 답답한 걸까….




“혜미야!”




나도 모르게 불쑥 큰 소리로 혜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런데….




내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혜미가 조금전과는 다른 반응으로 약간 놀라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보고 싶었어…나 너 많이 보고싶었어….”




내 목소리가 마치 흐느끼는 것 같았다.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눈물에 나 자신도 순간 당황하고 있었다.


놀라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순식간에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렸다…




나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 현상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그런데…그런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나도 모르게 약하게 약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내 어깨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내 가슴 속에 어떤 느낌이 응어리 지어져 있는데….


도대체 그 정체를 모르겠다.


어떤...어떤 서러운 감정이 북받쳐 흐른다....




내가 혜미 때문에 흘리는 세번째 눈물이었다….




혜미가 멍한 얼굴로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 것 같다…




혜미의 얼굴이 멍하니 놀란 빛을 띈 채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내 마음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았던 내 행동이 쪽팔리다고 느낀건가…


어쨌든 다시 내 마음이 빠른 속도로 냉정을 되찾아 간다…




“잠시만…잠시만….”




내가 혜미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약간의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




혜미가 묵묵히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마음이 진정되었다.


이제는 괜찮은 것 같다.




아아 씨팔 쪽팔려…


내가 왜 그랬을까.




혜미가 나를 보고 있다.




부끄럽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다.




“저 많이 보고 싶었어요?”




혜미가 불쑥 물어 온다.


혜미의 눈빛이 뭔가....


뭔가 기대하는 듯...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어.




쪽팔리지 않아...


쪽팔리지 않는다!!!




나는 주저없이 고개를 자연스럽고 단호하게 끄덕였다.


마치 기내에서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첫번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던 것처럼 그렇게.




혜미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뭔가 눈빛이…눈빛이 살아나고 있었다.


뭔가 혜미의 눈빛이…간절한 빛을 띄어가고 있었다.




혜미의 폰이 또다시 울린다.


이번엔 문자인가 보다.




혜미가 문자를 확인했다.




표정이 굳어지더니,


“잠시만요” 그러고선 문자로 답을 보낸다.


손가락의 놀림이 무척 빠르다.




혜미의 문자를 치는 모습을 보며 뭔가 결심을 했다.


문자를 다 치기를 기다려 내가 혜미에게 말을 건넨다.




“혜미야!”




“네?”


혜미가 나를 쳐다본다.




“누가 널 괴롭히니?”




“…………………?”




“아무도 널 못 괴롭혀.”




“……………”




혜미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무도 널 못 괴롭힌다구.”




“………………”




“내가 가만히 안있을테니까.”




혜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뭔가 마음 속에 어떤 동요가 일어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지켜줄거니까.”




“……………”




“네 곁에 있고 싶어.”




“………………”




“나 네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어.”




“…………………!”




“가사가 좋더라.




넘쳐나는 뜨거운 눈물은 언제까지 계속되는걸까….


나도 다시 빛나게 될거야….


오늘 밤의 달처럼…..




이게 가사 뜻이더라.


그 눈물이 안좋은 눈물이라면 이제 그만 흘리자.




넌 그런 눈물 안 흘려도 돼.


혜미가 그런 눈물 흘리는 거 오빠는 싫다.




차라리 내가 대신 흘릴께."




혜미가...그윽한 눈빛으로 내 눈을 바라보고 있다.




"오빠랑 노력하면 안될까?


다시 빛날 수 있도록 말야…


그 노래 속의 달처럼 다시 빛날 수 있게 말이야.




난 너랑 그러고 싶어.




결정은 네가 해라.


네가 결정할 수 있어."




혜미의 눈빛이 흔들린다...요동친다.




"혜미가 탐나.


혜미 널 가지고 싶어.


내 곁에 두고 싶어.


계속 껴안고 싶어.


진심이야.


네가 좋아.


혜미야, 네가 좋아.”




내 입에서 한달음에 진심의 고백이 줄줄 나와버렸다.




혜미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혜미의 호흡이 일어나고 있다....




“흠흠…!!!”


내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씨익~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의자에 바른 자세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기분이 갑자기 업되기 시작한다.




“………………?”


혜미도 이 인간이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어리둥절 해 한다.




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진지한 톤으로...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혜미에게 들려주었다.




“임 재성입니다.


오늘은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혜미의 눈이 내 입가를 주시하고 있다.




“제5위,


기내에서 최선의 서비스로 승객들에게 봉사한 후 고된 업무에 지친 몸을 달래느라


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귀여운 조혜미.”




“………………”




”제4위,


공항에서 자신을 기다린 이를 위해 예의바른 단정한 자세로 인사하며,


답례로 기내용 땅콩 두 봉지를 건네주며 햇살 아래서 밝게 웃던 생뚱맞은 조혜미.”




“…………………”




”제3위,


낯선 노숙자 아저씨를 위해 지갑의 동전이란 동전은 모조리 찾아내어 한웅큼 씩 안겨드리고도


미안해 하며 동전을 더 찾아내려 애쓰던 상냥하고 다정한 조혜미.”




“…………………”




“제2위,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성껏 정돈한 단정한 복장으로 멋진 포즈를 취해주며


좋아하는 이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벅찬 설레임을 안겨주던 아름다운 조혜미.”




“……………………”




”제1위,


나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해준


그래서 언제나 생각날 때마다,


나를 감동시키고 눈물짓게 하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조혜미.”




“…………………….”




“혜미가 언제나 행복했음 좋겠습니다.


혜미가 언제나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임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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