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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야설 여승무원, 연인, 여자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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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야동의민족 댓글 0건 조회 10,335회 작성일 25-01-23 14:15

본문

<마지막 회>






세상은 평온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히 흘러가 버리는 평온한 세상의 시간 속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난 항상 울고 있다.


슬퍼서가 아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넘어야만 하는 균열이 있어서....


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그 곳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계속 잃어갔다.




서로 나누어 가지기를 원했던 미래도....


함께 그려나가고 싶었던 꿈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복도....




이젠 무엇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단 하나 남은 건....




그녀를 좋아했다는 것....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




살아있다는 건...어떤 걸까....


죽는다는 건...또 어떤 걸까....




가끔씩은....


내가 살아있는 건지 죽어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무엇을 살아있다고 하는걸까....


무엇을 죽는다고 하는걸까....




무엇을 정상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미쳤다라고 부르는 걸까....




더 이상....


아무 것도....


나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혜미의 유골은 재가 되었고....


그녀처럼 불행하게 살다 간 어머니의 곁에 안치되었다.




그 재와 함께 뿌려져 사라져 버린 것은....


내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 있고....


혜미는 이 세상에 없다....




손가락을 깨물어 보면....통증이 온다.


뺨을 스스로 내리쳐보면....아픔이 느껴진다.




배가 고픈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밥을 먹는다....




눈물을 흘려 베개가 촉촉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잠을 자고 잠에서 깨어났다는 증거다.




하지만...


혜미는 그럴 수가 없다.




아픔도 느낄 수 없고,


배가 고플 수도 없고,


잠도 잘 수 없고, 당연히 깨어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는....혜미의 모습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다....




기내에서 졸던 모습도....


조수석에 앉아 언제나 손으로 턱을 괴고…밝은 눈으로 바깥 풍경을 내다보던 그 모습도....


맛있게 라면을 먹던 그 모습도....




이젠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찾아도 그런 모습은 세상에 더 이상 흔적이 없다.




내 곁에 있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이젠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직....내 마음 속에서만....


나의 뇌활동이 만들어내는 기억의 영상 속에서만....




내가 보지 못한 그 아이의 모습은....


오로지 꿈에서만.....




그것도....매일 밤마다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난 언제나....


어디에서나....


틈만 나면 잠을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의식적으로 잠을 자는 습관이....




혹시나라도....


꿈에서라도....


잠시나마라도....


단 한번이나마 더....자주 볼 수 있기 위해서....




그 아이를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단 1초의 백만분의 1만큼의 시간이라도 좋으니....




단 한번만이라도....




단지 스쳐지나가는 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 아이를 데려가버린 그 아이의 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고 또 기도드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꽤 적지않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다음 해에야 난 비로소 석모도를 홀로 찾을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며칠 전부터....


혜미와 함께 이 곳을 다시 찾는 꿈을 꾸고 있었다.




혜미의 영혼과 함께....


다시한번 이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혜미가 나와 다시한번 함께 오고 싶어했던 그 곳을....


이제 나 홀로 찾아왔다.




펜션은 그대로였다....




이 곳에서....


혜미가 내 영혼을 구원해 주었다....




이 곳에서 뜨거운 섹스를 나누었고....


혜미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혜미 덕분에....나 스스로를 구해냈던....눈물을....




그 전에....


이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혜미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혜미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향해 다가와 줄....


그런 희망을 바라고 있었다....




바로 이 곳에서....


이 안에서....




그 아이는 나를 위해 유니폼을 입고 서 있었다....


어느 새...메이크업까지 확실히 다하고선....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복장을 하고선....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앞에서 서 있어 주었다.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그 때의 혜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하늘색 상의에 하얀색 스커트...


스타킹은 신지않은 매끈하고 잘 빠진 다리에 검정색 샌달형 끈이 달린 구두...


말아올린 승무원 헤어스타일에 하늘 빛 뾰족한 머리 핀에,


흰색 스카프까지 목에 두르고 있어주었다.




샤워를 하고 메이크업으로 취기를 감추었지만, 양 볼은 붉으스레한 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묵묵히 혜미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어떤 별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눈빛으로 눈 앞에 보이는 혜미의 모습만을 쫓고 있을 뿐이었다.




혜미가 어색한 듯 잠시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었다.


그러더니 "킥!"하는 웃음소리를 살짝 터뜨리며 고개를 들고는 내 두눈을 응시했었다.




얼굴엔 활짝 웃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양 볼의 보조개와 눈웃음.....


예쁜 유니폼과 메이크업에 어울리게 빛나고 있었다.




"이 모습이 보고 싶었어요?"




혜미가 활짝 웃으면서 내게 물어왔었다.




"응."




나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었다.




"보니까 어때요?"




혜미가 그렇게 물어왔었다.




"흠....그냥...예쁘다."




나는 예쁘다고…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우리들의 대화가 뚜렷이 기억난다....




"정말요?"




"정말로. 정말로 예뻐."




"기내에서 볼 때와는 달라요?"




"응...많이 다른 느낌이야."




"어떤게 더 좋아요?"




"둘 다...둘 다 좋아..."




"조금 전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샤워를 해도 머리가 조금 어지럽네요.


조금 헤롱거리더라도 이해해 줘요, 오빠."




"그럼....난 괜찮아...."






그럼....난 괜찮아....난....괜찮아....




어느샌가 또 눈물이 흘러 내린다…




난....괜찮아....


난....괜찮아....혜미야....




괜찮다고 중얼거려보지만....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혜미와 함께 거닐었던 갯벌을 걸어보았다....




보문사에도 올랐다.


혜미는 이 곳에서 무척 신이 나 있었다....




“불교에선....환생....윤회를 이야기하잖아....


나....다시 태어나고 싶었거든....


다음 세상엔....꼭 평범하게....그렇게....


엄마랑....또다시....그렇게....




다음 세상에선....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하게....그렇게 살고 싶어서....”






남들처럼....평범하게....행복하게....


그렇게 살고 싶어서....?




혜미야....


남들의 평범함이....너에겐....너라는 아이에겐....








절을 내려와 담배를 한 개피 꺼냈다....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미안, 혜미야....


오빠 아직....담배 못 끊었어....






사방을 둘러본다.


주말이라 그런지....사람들이 적지 않다....


저 사람들은....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바쁘게 생활하다가....


휴일에 모처럼 이 곳을 찾고....여유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나는 이 곳에서....




다시 또 한 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다시 한 모금을 빨아보았다.






그 때....


절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틀림없이 낯익은 얼굴....


저 여자는....




그 여자도 내 모습을 발견하고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버린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도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이네?”




“그래....정말 오랜만이다.”




수연이....


수연이다....




이미....여러 해가 흐른 후에....


이 곳에서....이런 모습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내 시선이 수연이 곁에 서있는....




수연이의 손을 맞잡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에게로 옮겨졌다....




한 눈에 알 수 있다.


수연이의 딸인가 보다.


예쁜 자기 엄마의 모습과 꼭 닮았다.




“딸이야?”




“응.”




수연이가 밝게 웃는다.


그러면서 어리둥절해 하는 딸의 손을 꼭 잡아 보인다.




“안녕하세요!”




한 아가씨가 싱글벙글....하지만 약간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고서 인사를 건넨다.




“아....!”




“수진이....기억하지?”




수연이가 웃으며 자기 여동생을 바라본다.




“그래....기억하고 말고. 너랑 나이차이가....세살이었던가?”




“그래. 기억하고 있네.”




수연이 웃는다.




예쁜 얼굴....밝은 웃음....


하지만 예전보다 웬지 약간....초췌해 보인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걸까....




“소연아, 이모한테 와....”




수진이 소연이라고 부르는 여자아이를 안고 살짝 한켠으로 물러나준다.




수진이 역시 언니처럼 예뻤다.


어릴 때는 쑥스러움을 많이 탔었다.




“결혼했구나. 뒤늦게나마 축하한다...행복하니?”




“그럭저럭.”




수연이 밝게 웃는다....하지만 다소 처량한 빛을 띄운다.




“애 아빠는?”




“외국에 있어. 일 때문에.”




“그렇구나....애가 참 예쁘네....엄마를 꼭 닮았다. 몇 살이야?”




“네 살.”




“크다....그런데 언제 들어온거야? 여전히 외항사?”




“아냐, 그만둔지 꽤 됐어. 귀국해 있어. 다른 곳에서 일해.”




“아....! 남편이랑 떨어져서 힘들겠네?”




“후훗, 괜찮아. 생이별한 것도 아닌데....”




순간적으로 수연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잠깐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건넨다.




“미안....사실은....오빠 소식 들었어....안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도 알아....”




“....................”




“힘들겠지만....그래도 힘 내.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




“그래....고맙다....”




우울함이 밀려왔다....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수진이도 직장에 다니는거야?”




“네!”




수진이 어느새 내 말소리가 들리는지 약간 큰 소리로 대답하며 웃어보였다.




“직장이 어딘데?”




“여의도에 있어요.”




“여의도? 나도 여의도에 있어. 어딘데?”




“어? 정말요?”




알고보니 회사가 서로 무척 가까웠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하지만 서로 만나지 않는다면 어찌 알겠는가…


내 명함을 건네주고 다음에 다 같이 가까운 곳에 모여서 식사라도 하자고 했다.




생활 속의 잔잔히 피어나는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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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왔고....


한 달이 조금 못되는 시간동안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바쁜 것이 좋다....


바쁘게 일하는 동안에는…모든 아픔과 잡념에서 잠시나마라도 벗어날 수 있으니....




그러던 어느 날....점심 때 전화가 왔다.


수진이었다.




다같이 만나기에 앞서 오늘 저녁에 우선 자기한테 한턱 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흔쾌히 약속을 정했다.




퇴근을 하자마자, 약속장소로 달려갔다.


수진이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맛있게 저녁을 먹었고, 수진이 자기가 차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수진이는 성격이 몹시 얌전하면서도 사람의 기분을 맞출 줄 알았다.


모처럼 다른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빠!”




차를 한 모금 들던 수진이 문득 나를 불렀다.




“응?”




“음....진지한 이야기 하나 드려도 될까요?”




“응, 물론이지, 거리낌없이 이야기 해보렴.”




“후훗....!”




수진이 내 능청스러운 모습에 웃음을 띄운다.


그러다가....웃음을 거두고선....


이야기를 할까말까 하는 눈치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니? 오빠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울께.”




“아뇨....그런건 아니고요....”




수진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혼자서....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봤는데....


그 날 오빠랑 언니가 하는 이야기....저 사실 다 엿들었어요.


그리고....언니 표정을 보고 확실히 알았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언니는 미혼모에요.”




“으응?”




놀랐다....


수연이가 미혼모라니....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수진의 말이 계속 귀에 들려왔다.




“언니는 미혼모에요.


언니가 왜 소연이 나이를 오빠한테 잘못 말할까 싶었어요.


소연이는 네 살이 아니라 다섯 살이에요.”




“소연이가 다섯 살이라고?”




뭔가....이상한 느낌이 내 신경으로 전달되었다....


하지만....하지만....




“남편이 외국에 있다고 하던데? 일 때문에....”




“그런거 없어요. 제가 동생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언니....임신하고서....그것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요....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고 지쳤어요.


언니는 애 아빠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었고....


아이 때문에 언니를 좋다고 쫓아다니던 다른 남자랑 동거생활도 했었어요.


하지만....오래 가지 못했죠....


언니는 그것 때문에 더 상처 받았어요....”




“....................”




맙소사....이럴 수가....!!!




“그 날....그리고 그 날 이후....언니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서 확실히 느꼈어요....


오빠....이런 말 드리기 정말 죄송한데....


저....저 혼자 고민 많이 한건데....


언니....우리 언니 오빠 많이 좋아했었잖아요....학교 다닐 때부터....계속....


그래서....그래서....”




그래, 맞아!!!




나는 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그래, 맞아....


어떻게 된건지 알겠어....




알겠어....아마도....맞을거야....!




수연아....!




도대체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그럴 필요 없었잖아....


그럴 필요 없었잖아....




난 뒤로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힘있게 감았다.


눈물이 빠른 속도로 흘렀다.




“오빠!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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